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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다 한 마디/피터 드러커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구글이 모터로라를 인수하면서 그것이 삼성과 LG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언론에서 상당히 자세히 다루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 중에서는 삼성과 LG가 안드로이드를 확보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날려버렸다는 주장도 나온다.1)

여기서 나는 다시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목의 대상이 되는 삼성 같은 대기업은 사실 기업 자체가 악덕한 것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이 잘 못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에서 최고 핵심적인 개념인 ‘effectiveness’의 번역이 미흡하다고 주장해 왔다. 피터 드러커의 원서, “The Effective Executive”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Effectiveness’이다. 이 단어를 통해 피터 드러커가 설명하고자 했던 개념은 다음 문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The executive is, first of all, expected to get the right things done.(The Effective Executive, 1985, p. 1)

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right’이다. 올바른 일을 되게 하는 것이 실무자(executive: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볼 때 이 단어에 대한 번역도 나는 반대한다)의 일이다. 그런데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를 보면 ‘올바른’이 빠지고 그저 ‘일을 되게 하는 것’을 ‘Effectiveness’의 의미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잘 못이다. 다음 문장을 보자.

For mannual work, we need only efficiency; that is, the ability to do things right rather than the ability to get the right things done.(The Effective Executive, 1985, p. 2)

더불어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육체노동자에게는 능률(efficiency)만 필요했다. 그것은 올바른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do things righ)이다.

이렇게 ‘올바른’을 넣어서 번역해 놓고 뒤에 가서는 전부 그것을 생략해 버렸을까? 솔직히 여기서도 번역문의 의미를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능률을 언급하는 부분을 보라. 주어진 일이 바로 목표 아닌가? 그렇다면 번역문에서는 ‘efficiency’와 ‘effectiveness’가 ‘right’라는 단어의 위치만 달랐지 거의 같은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 위치의 차이가 사실은 엄청난 의미상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는 그점을 무시하고 있다.

올바른 일이 되게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름 제대로 번역된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를 보자.

불량품만 만즐어내는 설계도를 재빨리 작성하는 엔지니어링 부분만큼 기업주를 실망시키는 비정상적인 것도 없다. <올바른>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이 지식 작업을 의미 있게 만든다.(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2003, p. 14)

설계도를 작성하는 것은 목표다. 이것은 능률적인 사람도 할 수 있다. 불량품이 나오지 않는 설계도를 만드는 것은 올바른 목표다. 이것은 효과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번역을 해놓고도 한국판 “The effective Executive”는 ‘올바른’의 개념을 빼버린 채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서 지식 작업이란 것에 대해 잠깐 부연 설명을 하겠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지식 근로자의 과업이다. <목표를 달성한다(to effect)>는 것과 <과업을 완수한다(to execute)>는 것은 결국 동의어나 마찬가지다.(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2003, p. 11)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To be effective is the job of executive. “To effect” and “to execute” are, after all, near-synonyms.

여기서 “executive”는 “지식 근로자”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executive”의 과업도 지식 근로자의 일과 같은 의미가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나는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옮긴이 후기를 보고 번역가가 ‘effectiveness’의 개념을 잘 못 잡았다고 생각하게 됐다.

2. 그리고 Effective는 <효과적>, <유효한>, 또는 <유능한>이라는 추상적 표현보다는 <목표를 달성하는>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드러커의 원래 의도에 한층 더 가깝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드러커는 이 책에서 efficiency, 즉 효율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으며, 오직 조직이 설정한 목표 또는 지식근로자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근로자가 설정한 목표는 올바른 목표여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올바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지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이 책의 번역가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아예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이제 내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와 관련하여 처음에는 구글이 아니라 삼성이나 LG가 안드로이드를 차지할 기회가 있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 순간 잘 못 번역된 ‘effectiveness’의 개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한국인들의 머릿속에는 효율은 있지만 효과(effectiveness)는 없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짧은 기간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한미 FTA 합의문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전문 번역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번역을 시킨 결과 온갖 오류가 발생하여 결국 비준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했다. 삼성과 LG는 비용 조금 아끼려다 미래의 대박 사업 기회를 날렸다. 그때 그 결정을 내린 사람들 머릿속에 효과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효율과 효과는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든다.

참조 1: “삼성·LG의 짧은 안목…안드로이드 놓쳐”, http://media.daum.net/digital/all/view.html?cateid=1008&newsid=20110818052903870&p=inew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