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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독후감/2014년

미국 해군 작전사 속의 한국 해군



미국 해군 작전의 역사 한국전

저자
James A. Field, Jr. 지음
출판사
한국해양전략연구소 | 2013-09-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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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려고 하지만, 역사학자들의 생각은 좀 더 복잡한 것 같다. 이 책이 미국 해군의 역사를 다루지만 그 역사가 이루어진 장소가 바로 우리나라였다는 점에서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아마 이런 복잡한 감정이 두려웠기 때문에 이제까지 나는 한국전쟁과 관련된 책들을 애써 외면해왔는지 모른다.

우선 이 책에서 밝히는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이 일본의 포함외교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기 전에도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를 통해 우리는 미국과 이미 접촉을 경험했던 것이다. 이 책의 기술에 따르면 당시 고종은 일제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간절히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러일전쟁 이후 미국은 냉정한 판단에 따라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상당히 가슴 아프게 다가왔던 이 부분에 대한 다음의 기술이 주는 교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력으로 저항할 수 없는 세력에게는 외부의 도움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는 조선의 독립이 아닌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만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일본에 맞서려는 한국인들 편에 서서 개입할 수 없다. 그들은 자력으로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했다.

미국 해군 작전의 역사 : 한국전 (6·25정전 60주년 기념 출간), p. 21


한국에 대한 내용은 1차 세계대전 시기로 31운동을 기술한 것으로 보이는 독립운동과 그 실패 이후 성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다루었다. 여기서는 임시정부와 미국을 연결해 주는 인물로 이승만을 언급했는데,  은근히 임시정부가 미국에 구애했다는 인상을 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 해군은 침체기에 들어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방개혁에 의해 해군과 해병대의 지위가 위협을 받게 된다. 당시 최첨단 무기를 보유한 병종인, 공군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해군은 항공부대를 잃고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하는데, 이 부분은 현재 삼군통합을 추진하는 우리나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경우는 무턱대고 효과가 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만 의존했을 때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사례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김일성이 한두 해 정도만 더 늦게 남침을 감행했다면, 미국 해군이 그렇게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었을까?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그리고 미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이전, 우리 해군의 활동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으로 기술한 부분이 있어 특별히 인용한다.


그러나 1949년에 미국으로부터 예비부품들을 조달받기 시작하면서 전망이 밝아졌고, 한국 해군의 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 소장은 173피트 길이의 강철 선체로 건조된 PC(구잠함) 4척을 구입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이 4척 중 1척의 구입비는 한국 해군 장병들의 성금으로 모은 것이었으며, 그러한 경우는 다른 어느 나라의 해군에서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함정 구입은 장병들의 사기앙양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 해군 작전의 역사 : 한국전 (6·25정전 60주년 기념 출간), p. 63


서해안과 남해안에 있던 함정을 감안하더라도, 동해안의 상륙에 대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세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 해군의 함정들은 즉시 출동했으며, 25일 밤에 한국전쟁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해전이 발생하였다. 한국 해군의 최용남(崔龍男) 중령이 함장이었던 PC 701함은 부산 북동쪽 해상에서 600명의 적 병력이 승선하고 있던 1,000톤급 무장증기선과 맞닥뜨리자 추격전을 펼쳐 전투 후 침몰시켰다. 남한에 대해 보급품과 증원군을 이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항구였던 부산이 초기에는 거의 방어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600명의 무장 병력을 익사시킨 것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미국 해군 작전의 역사 : 한국전 (6·25정전 60주년 기념 출간), p. 87


대한민국 해군 장교 출신이었던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은 참으로 다행이었고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미국 해군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우리의 작전 지휘권이 미군에 넘어가면서 미국 해군 작전사에 한국 해군의 활동이 상당히 많이 묘사되는 부분은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대신 미국 해군 기동부대의 일부로서 한국 해군의 활동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나름 환영이라고 해야 하나?

앞에서 환영이라는 표현이 왜 나왔을까? 지금까지 한국전쟁에 관련된 자료에서 해군의 활동은 10군단의 인천상륙작전과 원산 앞바다 유람 외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 해군이 함재기를 동원해 지상전을 지원하고 보급로를 차단했으며, 해안가 적의 진지와 보급선에 대한 함포사격을 실시했다는 정도가 한국전쟁에서 해군 활동에 대해 일반인이 알고 있는 내용의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해군의 역할이 중요했던 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이 책에서 기술한 한국 해군의 활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소극적이지 않았다. 특히 서해안에서는 복잡한 해안지형 때문에 유엔군이 보유한 대형 함정들보다는 우리 해군의 소형 함정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공산군이 발동선이나 목선을 통해 해상으로 보급을 기도할 때마다 우리 해군 함정이 그것을 저지했다는 점은 자랑스러운 부분이다.

한국 해군의 피해는 적과 전투 중에 발생한 것보다 기뢰에 의한 것이 더 많았다. 이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앞으로 북한이 다시 전쟁을 도발하더라도 그들의 해군력으로는 적극적인 함대교전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한국전쟁 당시에도 기뢰를 사용하여 많은 재미를 본만큼 다수의 잠수함과 기뢰를 통한 통상파괴전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우리는 눈에 띄는 적의 잠수함 위협에만 신경을 쓰고 기뢰전 수행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니다.

이 책에서 부각된 또 한 가지 사항이 있다면, 현대전은 엄청난 군수물자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엄청난 운송수단이 필요한데, 우리의 경우에는 특히 선박이 이어서 그 선박이 물자를 하역할 항만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이라도 부족하면 전방의 부대는 물자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한국전쟁에서 공산군은 잠수함의 활동이 없는 상태에서 기뢰전만으로 아군 함정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이제 그들은 비록 구식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잠수함 전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 둘을 결합할 경우 우리 해상교통로에 커다란 위협을 가할 수 있으며, 해군 작전 자체에도 지장을 주게 될 것이다. 기뢰전에 대한 우리의 대비가 충분한지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역사를 다룬 서적으로 가치를 지닌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국전쟁에서 우리 해군의 활약상은 그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