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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독후감/2014년

아직은 승부가 나지 않은 철학적 승부



세계관의 전쟁

저자
디팩 초프라, 레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10-1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주 탄생과 생명의 기원을 둘러싼 과학과 영성, 두 세계의 세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사실 내가 이 책을 처음 골랐을 때, 세계관보다는 전쟁이라는 말에 더 끌렸다. 그러다가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이 과학과 영성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는 방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전에 끌림은 사라지고 쓸 데 없이 골치 아픈 내용이 잔뜩 나열되어 있지 않을까 약간의 거부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쓸 데 없이 복잡한 내용일 것이라는 최초의 우려는 말 그대로 쓸 데 없는 것이었음이 곧 밝혀지면서 상당히 몰입한 상태로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읽기를 멈춰야 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각각 과학과 영성을 변호하는 두 저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주장을 읽은 뒤에 생긴 어떤 결론, 아니 결정에 가까웠던 생각이 그 다음 반론에 뒤집히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유별나게 다가왔던 부분은 번역가가 가급적이면 우리말 어휘를 많이 사용하려고 했던 점이다. 이를 테면, 물리학의 'field'는 모두 '마당'으로 번역됐다. 피드백은 되먹임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소소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참신하게 느껴졌던 우리말 단어들이 있었다.

처음에 영성이 과학을 공격하며, 과학이 없었다면 핵무기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을 때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레너드가 과학으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종교가 부추겨서 생긴 살인으로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반박하자 디팩의 논리가 초라해졌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자 긴장의 끈을 풀 수가 없었다. 다만, 이런 경향이 뒤로 갈수록 줄어드는데, 내가 보기에는 논의가 점점 더 깊은 수준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에서 진화, 생각, 우주 순으로 계속 새로운 소재를 꺼내다보니 정작 비슷한 논리가 반복됐기 때문인 것 같다.

우주를 생기게 했고 생명의 진화에도 관계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무작위성은 두 사람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부분일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디팩은 과학의 환원주의를 계속 공격했고, 레너드는 영성이 다루지 않는 생각의 어두운 부분을 반복해서 다루었다. 하지만 레너드의 과학은 뒤에 가서 종교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서 논쟁의 긴장이 더욱 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소재가 바뀐다는 점 자체는 계속 새로운 읽을 거리를 제공했다. 뇌의 손상으로 인해 멀쩡한 자기 팔을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든지,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엔트로피를 해석하는 방법 등은 나로서는 매우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은 뒤, 내가 내린 결론은 과학이 나름 정확하기는 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은 반면 영성은 모든 것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지만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와 같은 중간자적 입장의 사람들은 둘 중 어느 하나를 편들기 보다 둘 다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