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이 자의적일수는 있지만 이정도일지는 몰랐다. 책의 첫 장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될 기억의 단편들이 모두 제시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에서 그 단편을 꿰어 맞추는 주인공의 기억이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그런데 책의 중반에 가면 주인공의 기억이 전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오래 전의 사건들을 그저 자신의 입장에 맞춰 해석하고 그에 따라 조작된 사실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모종의 의도를 갖지 않는 채 순간적 감정에 휩쓸려 저지른 일을 주인공은 기억하지 못했고 왜곡된 기억만을 진실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비록 그것이 사실과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와 같은 기억의 왜곡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기까지는 내가 책을 덮고 처음에 든 소감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독자들이 책을 두 번 읽었다는 사실을 자신있게 밝히고 있다. 나에게 이 책을 권한 분 또한 책을 다시 읽었다고 했고 나 역시 책을 덮고 몇 가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어서 책을 다시 읽으려고 했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아하~ 책을 다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저자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책을 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다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찝찔한 기분에 저항했다. 그리고 저항은 성공했다... 아직까지는!
'독서하다 한 마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사 최대의 전투 모스크바 공방전 (0) | 2012.09.22 |
---|---|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단상) (0) | 2012.09.05 |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0) | 2012.06.29 |
전격전의 전설 (0) | 2012.06.29 |
역사의 원전 - 1 (0) | 2012.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