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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다 한 마디

2013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 대한 고르기아스적 해석



고르기아스

저자
플라톤 지음
출판사
이제이북스 | 2011-12-2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고르기아스』에서 플라톤은 철학과 정치가 연설술을 가교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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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문명 이야기: 그리스 문명>을 마침내 끝을 낸 이후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 친구가 올린 플라톤 시리즈를 보고 마침 도서관에 있던 <고르기아스>를 골라왔는데,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린 플라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오늘 피겨세계선수권 여자싱글 경기를 보고 갑자기 오늘 새벽에 읽은 <고르기아스>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따라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나쁜 것 중에서도 두 번째로 큰 것이네. 불의를 저지르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본성상 모든 나쁜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이자 첫 번째 것이네."(고르기아스, 플라톤 저, 김인곤 역, 이제이북스, 2011년 12월 27일, p. 129)


이 주장에 대한 증명은 그 앞에 나왔다. 한 마디로, 불의를 저지른 자가 대가를 치르게 되면 다시 정의로운 상태로 복귀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같은 해에 태어나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분명 주니어 시절에는 아사다 마오가 약간 더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성인무대에서 그 격차가 점점 줄어들더니 순식간에 역전됐고 지금은 아사다 마오가 도저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김연아의 수준이 월등하게 높아졌다.

두 사람 사이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아사다 마오가 실제 연기에 비해 과장된 점수를 받은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피겨스케이트의 세계로 치자면 점프에 실수가 있었던 것은 불의를 저지른 것이다. 불의를 저질렀으면 그만큼의 감점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아사다 마오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사다 마오는 이정도만 하면 된다는 타성이 생겨버린 것이 아닐까?

트리플악셀은 이미 몇 년째 연습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렇게 연습하고도 점프 하나 익히지 못할 만큼 아사다 마오가 재능이 없는 선수인가? 주니어 때의 모습을 보면 절대 재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만 이 정신적 문제는 일본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처럼 멘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멘탈이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읽으면서 이게 현실성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품게 했던 구절이 이렇게 금방 현실에서 실례가 나타나다니, 플라톤과 나는 운명적 만남인가 보다. 더불어, 자기가 싫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욕하지 마세요. 혹시 내 욕을 듣고 상대가 그 부분을 고치기라도 하면, 그것은 싫어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나 다름 없어요.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