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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독후감/2013년

세상은 이분법이 아니었다.



향연

저자
플라톤 지음
출판사
이제이북스 | 2010-01-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향연』. 요즘 쓰이는 ‘심포지움(원어; Symposion)’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 책을 통해 철학책이 어렵다는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 물론 아가톤의 만찬장에서 소크라테스가 정식으로 발언하기 전까지 나왔던 소리들은 결국 헛소리였기에 그다지 기억에 남지도 않았지만, 일단 소크라테스가 나서서 에로스가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과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는 논리로 앞서 사람들이 말했던 에로스에 대한 온갖 찬사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는 무엇인가를 찬양한다는 것이 그것이 가진 장점을 밝힌다는 원래의 취지를 벗어나 아무것이나 최고로 좋은 것들을 갖다 붙이게 되는 봉헌 행위로 전락하는 행태가 부각됐다.

이 책에 앞서 뤼시스에서는 정이 아니면 반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일관하다가 어떻게 보면 사랑(에로스)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우정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실패했는데, 그 과정을 읽는 내내 나는 답답한 기분을 느꼈었다. 반면 <향연>에서는 지혜로운 것과 무지한 것 사이에 지혜를 사랑하는 존재를 상정함으로써 이분법적 논리를 극복한 것이 가장 멋진 부분이었다. 이를 통해 사랑이 좋은 것을 늘 가까이 하려는 것에 대한 것이며 또한 불사에 대한 것임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가 듯이 자연스럽게 이끌어 냈다.

플라톤의 작품에 대한 거의 모든 번역서들이 그렇듯이 앞에 제시된 설명에 따르면 마지막에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해 지극히 수준 높던 대화를 육체적 사랑과 그에 따른 질투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부분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순환적 구조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왜 이 책에 포함됐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내가 동성애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이성애자로서 남성들 사이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포감을 갖고 있는데(남들이 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내가 대상이 되면 곤란하다는 것이죠), 알키비아데스가 동성애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불쾌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배운 사실을 이야기하는 부분만으로도 철학을 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었던 명작이다.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내서 플라톤의 나머지 작품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