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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독후감/2013년

페르시아 원정기는 이른바 자기계발서의 시조인가?



페르시아 원정기

저자
크세노폰 지음
출판사
| 2011-08-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크세노폰, 리더십에 대한 보편적 원칙을 보여주다!『페르시아 원정...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 책을 실제로 읽기까지 매우 크게 주저했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두어야겠다. 내가 대충 알고 있는 줄거리는 페르시아의 어느 왕자에게 고용된 그리스 용병들이 전쟁에 패하고 소아시아 일대를 돌아다니다 결국 그리스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줄거리에 따르면 이 책에서 주로 말하게 될 내용은 행군, 행군, 그리고 또 행군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필리핀에 잡혀 있는 미군 포로를 구출하는 작전을 다루었던 어느 영화에 대해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작용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두려움은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다른 두려움들이 그렇듯이 쓸 데 없는 것이었다. 옮긴이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이 동시대에서부터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읽혔으며 최근에 와서야 깊이가 없다는 이유로 투키티데스나 플라톤에 비해 낮게 평가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내용이 재미있어서인지 아니면 유익해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양쪽이 모두 해당된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대왕이 도랑에 나타나 퀴로스의 군대가 통과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자 그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대왕이 싸울 생각이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퀴로스는 좀 소홀하게 행군했다(70).” 이 구절을 읽을 때는 누구나 퀴로스의 군대가 곧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받게 될 것이다. 마치 소설의 복선을 깔듯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암시하는 것 같은 이런 구절들을 보고 나는 이 책이 상당한 짜임새를 갖춘 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형식적으로 짜임새가 있다면 내용적으로도 풍부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를 테면, 페르시아인들의 음모에 결국 살해당하게 되는 클레아르코스에 대해 이런 묘사가 등장한다. “그는 왼손에 창을, 오른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이 일을 하도록 동원된 자들 가운데 누가 게을리 한다 싶으면 얻어맞아 싼 자를 가려내어 때렸다. 그런가 하면 그는 진흙 속으로 내려가 함께 거들곤 했다. 그래서 모두들 그와 열성을 다투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100).” 클레아르코스가 상당히 유능한 지휘관으로 묘사되는 이 책의 분위기를 볼 때, 이 문장은 무릇 지휘관은 형벌을 주저하지 않으면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전우들이여, 내가 직접 보고 겪은 바에 따르더라도, 전시에 어떤 방법으로든 목숨을 건지려는 자들은 대개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지만,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불가피한 몫이라는 것을 깨닫고 명예롭게 죽으려는 자들은 오히려 고령에 도달하고, 살아 있는 동안 더 행복한 삶을 살지요. 우리는 지금 이런 위기를 맞았으니, 이 점을 명심하고 우리 자신도 용감해야 하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격려해주어야 할 것이오(134).” 이런 구절을 읽을 때는 이순신 제독이 살려는 자는 죽을 것이오, 죽음을 각오한 자는 살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위기를 맞아서 그것을 헤쳐 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각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같은 것이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좌절을 겪었어도 긍정적인 측면을 끌어낼 줄 알아야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추격했을 때는 여러분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소. 우리는 적군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큰 어려움을 겪으며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말이오. 그러니 적군이 큰 군세가 아니라 작은 군세를 이끌고 와서 우리에게 다소 피해를 입히기는 했어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었던 것에 신들께 감사하도록 합시다(147).” 이것은 퀴로스가 전사하고 그리스 용병들이 단독으로 철수하게 됐을 때, 적이 기병과 궁수를 동원해 자신들은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그리스 용병들을 괴롭히자 이를 보다 못한 크세노폰이 적을 추격했다가 그 역시도 적을 어쩌지 못하고 간신히 후퇴한 뒤에 다른 지휘관들의 비난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하는 말이다. 여기서 크세노폰은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책까지 수립함으로써 이후에는 적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교훈적인 장면들 외에도 지휘관이 도덕적으로 결점이 없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거나, 고난을 당했을 때는 쉽게 단결하지만 그 고난이 해소됐을 때는 분열하게 되는 인간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들 속에서 크세노폰이 그에 대처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것이 진정 자기계발서의 시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나라 출판계에는 자기계발서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솔직히 그 중에는 개인적이고 특이한 경험이나 심지어 잘못된 논리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보라 - 마치 일반적인 교훈인 것처럼 과대포장해서 내놓은 쓰레기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고전에는 2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진리들이 존재하는데, 굳이 쓰레기를 만나게 될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그것이 재미까지 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