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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독후감/2013년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본 것인가?



에우튀데모스

저자
플라톤 지음
출판사
이제이북스 | 2008-01-2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그리스어 원전에 충실한 플라톤의 대화편 읽기 플라톤의 작품들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이 책을 읽어야 할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 본문 앞의 해설부터 읽었을 때, 나는 이것이 익살스러운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익살스럽다기는커녕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당연히 틀린 말을 너무나 태연하게 내세우는 소피스테스들의 모습에 화가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펼친 논리는 전혀 익살스럽지 않았다. 배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가 아니면 무지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클레이니아스가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하든 그것은 논박을 당할 것이라는 암시가 있었다. 클레이니아스는 지혜로운 사람이 배운다고 대답했는데, 만약 무지한 사람이 배운다고 대답했을 때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대응했을지 궁금하다. 그래도 여기는 배우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보통 우리는 구분하지 않고 배우는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논리하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물론 그것도 해설을 보고 난 다음에야 알게 됐지만).

하지만 그리스어의 'einai(to be)'의 의미를 '~이다'와 '~있다' 그리고 '참된 것'이라는 의미로 마구 뒤섞어서 논리를 펼치는 부분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이해가 곤란한 이런 부분은 언어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난해함으로 여기고 그냥 편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까지 이해를 하게 될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대신 대상의 질을 행위의 질로 변형시키는 부분, 훌륭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 말하는 크테십포스의 주장을 이용해 좋은 사람은 좋다고 나쁜 사람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좋은 사람은 좋게 말하고 나쁜 사람은 나쁘게 말한다는 논리를 끌어내는 부분은 나름 재미가 있기도 했다.

논의가 계속 이어지다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닌 자는 아버지가 아니다'라는 논지를 갖고 '소크라테스는 아버지가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부분부터는 궤변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는 느끼게 됐다. 분명 이 부분은 자신의 지혜를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게 궤변을 늘어놓다가 결국 파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도 크테십포스가 그들가 똑같은 방법으로 말장난을 하는 부분부터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만 이 부분 역시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책을 덮고 잠시 여유를 가진 뒤에 생각해 보니, 플라톤이 이 책을 쓴 목적이 정말로 스피스테스들의 터무니없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면, 사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방식이 같은 방식으로 논파를 당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처음 논의가 시작될 때 소크라테스가 두 사람의 소피스테스에게 주문한 것은 클레이니아스가 지혜를 사랑하고 덕을 돌보도록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에는 자신이 있다고 나선 그들이 한 짓은 '배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가 아니면 무지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클레이니아스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소크라테스가 장난은 그만하고 정말로 클레이니아스에게 지혜와 덕을 권해달라고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엉뚱한 논리만을 선보였을 뿐이다. 이렇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잘 한다고 주장한 일에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 가는 과정을 걷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각각의 논쟁을 이해하지 못해도 소피스테스들의 논쟁술은 논쟁을 위한 논쟁의 기술일 뿐 정작 누구를 설득하거나 지혜를 추구하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개별적인 논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은 이정도 수준에서 만족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