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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독후감/2013년

위기가 곧 기회임을 증명한 인물



Admiral Arleigh Burke

저자
E. B. Potter 지음
출판사
US Naval Institute Press | 2005-02-28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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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을 언급하면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은 부분에서 늘 등장하기 마련인 이름,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는 <미국 해군 100년사(One hundred years of sea power : the U.S. navy, George W. Baer, 김주식 역)>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되기 전까지 나에게는 그저 미국 해군의 유능한 장교였을 뿐이었다. <미국 해군 100년사>에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니미츠나 킹보다 그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하고도 인연이 깊어서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도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등장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이 이지스 구축함을 도입했을 때, 그 선도함의 이름에 아직 생존해 있는 그의 이름을 붙이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 우리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놀라울 뿐이다.

일단 책을 읽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알레이 버크 제독의 전기가 독특한 점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의 여러 장성이나 제독들과 달리 그가 태평양 전쟁에서 현장 지휘관이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 전기에서 그가 구축함 전대를 이끌고 일본 구축함을 상대로 해전을 벌이는 짜릿한 순간을 보게 된다. 더불어 미처 제독의 참모장으로서 기함이 가미가제의 공격을 받아 함교가 대파됐을 때, 그 참상을 묘사하는 장면도 기존의 다른 장성이나 제독들의 전기에서는 느낄 수 없던 피비린내를 풍겼다.

한 사람의 인물을 평가하는 측면에서 볼 때, 알레이 버크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아마 가장 큰 위기는 영원한 구축함 장교로 남고자 했던 그에게 갑자기 미처 제독의 참모장이 되어 항공전을 수행하게 됐을 때였을 것이다. 자신이 잘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직책이라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그냥 뛰어난 해군장교라는 평가 속에 역사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 대신 그는 항공작전에도 정통한 구축함 장교로 성장하여 이후 해군이 반드시 달성해야 할 중요한 일에는 꼭 불려가게 되는 믿음직한 장교가 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해군의 "국민노예"가 된 것이다. 유명한 '제독의 반란'으로 인해 해군장관이 알레이 버크를 장성 진급자 명단에서 제외시키려고 했을 때, 해군이 보여준 반응은 그가 해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존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반면 초과근무를 중시하는 그의 업무 방식은 현대 우리의 관념과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알레이 버크의 참모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심한 좌절을 맛보았지만, 해군중장까지 진급했던 어떤 대령의 사례를 통해 그의 방식이 전적으로 옳지만 않다는 암시를 주는 이 책의 서술방식은 약간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저자인 포터는 원래 직업이 역사학자여서 그런지 한 인간에 대한 평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기에 언급되는 장면들을 당시 상황에 맞춰 생각해 봐야만 여러 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저자가 특정 일화를 선택한 이유를 깨달게 된다. 따라서 책을 덮고 맹물을 마신 느낌이 들었다면, 내 머리가 주입된 정보를 처리하는 동안 잠시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